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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수레바퀴/기록성

프랑스식 사랑 - 조선일보 스크랩

by 산에사는꽃사랑 2017. 2. 9.

[태평로] 프랑스식 사랑
김광일 논설위원·前 파리 특파원

정치 신인 에마뉘엘 마크롱이 프랑스 대선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 나라 대선은 두 달 보름 남았는데, 마크롱은 후보 지지율에서 둘째다. 결선에 가면 지지율 1위인 마린 르펜을 더블 스코어로 눌러 이긴다는 분석이 나왔다. 프랑스는 여론조사 예측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나라다.

프랑스 대선은 대개 1차 때 극좌에서 극우까지 15명 안팎 후보가 출마하지만 결선투표는 으레 보수와 좌파가 맞붙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화당도 사회당도 가망이 없다. 극우인 르펜도 온건 중도를 표방한 마크롱에게는 양자 대결에서 진다.

마크롱에게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또 있다. 부인이 스물다섯 연상이다. 둘이 함께 있는 사진을 보면 모자(母子)지간 같다. 부인 브리지트 트로뉴는 마크롱이 열다섯 살이었을 때 그에게 문학을 가르치고 연극반을 지도하는 교사였다. 아이가 셋이고 남편도 있었다. 프랑스 북부 소도시 아미앵에 살던 트로뉴와 마크롱은 매주 금요일 대본을 들고 따로 만났고 연인 관계로 발전해갔다.

마크롱 경제장관(오른쪽)과 부인 브리지트 트로노/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39)과 그의 부인은 25살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에 성공한 커플이다. /AP

부모가 깜짝 놀라 마크롱을 파리로 유학 보내 둘 사이를 떼어놓았다. 그러나 마크롱은 트로뉴에게 "꼭 다시 돌아와 선생님과 결혼하겠다"고 맹세했다고 한다. 트로뉴도 이혼하고 아예 파리에 교사 자리를 구했다.

이들은 10년 전 결혼했다. 마크롱은 자신을 받아준 트로뉴의 자녀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올해 마크롱은 서른아홉, 트로뉴는 예순넷이다. 짓궂은 사람들은 뒤에서 쑥덕거렸지만 여론은 마크롱에게 열광하고, 드디어 30대 대통령이 탄생하는가에 관심을 쏟을 뿐이다.

소설 '연인'으로 유명한 여성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서른여섯 살 연하인 작가 얀 앙드레아와 16년을 연인으로 살았다. 알코올중독에 시달렸던 뒤라스는 앙드레아가 없었다면 1996년 세상 뜰 때까지 인생 마지막을 더 고통스럽고 힘들게 보냈을 것이다. 두 사람 얘기는 '이런 사랑(Cet amour-la)'이란 영화로도 나와 있다.

미테랑 대통령은 중년 이후 삶을 혼외 연인인 안 팽조 여사와 함께했다. 딸까지 두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미테랑은 마흔다섯, 팽조는 열아홉이었다. 스물여섯 살 차다. 미테랑의 부인 다니엘은 남편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관저인 엘리제궁에서 살지 않고 따로 아파트를 얻어 지냈다. 미테랑 장례식 때 검은 상복을 입은 다니엘 미테랑과 안 팽조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무척 낯설었으나 프랑스인들은 담담하게 바라봤다.

프랑스 사람은 사랑에 대한 생각이 남다르다. 사회적 평판이나 주변 눈치를 괘념치 않는다. 트로뉴가 말한 것처럼 "지금 하고 있는 사랑을 놓치면 내 인생을 놓치는 것인지", 그것만 중요하다.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이 진실한 사랑인지 묻고 확인할 뿐이다. 언론도 유권자도 그걸 인정해준다. 유명 정치인에게도 똑같은 잣대를 갖다 댄다.

나라마다 독특한 문화가 있다. 무조건 닮자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저녁 삶을 누리고, 어떤 사람과 사랑하는지, 그런 부분이 본질을 흐리면 안 된다고 보는 것 같다. 당사자의 정치적 이념과 태도를 사생활과 섞지 않는다. 중심과 주변을 혼동하지 않는다. 이런 '프랑스식 사랑'이 그들의 힘일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2/07/2017020703373.html